사진가가 사진을 찍는 행위는 흐르는 시간을 절취해 공간으로 재배치하는 행위다. 공간이 재배치되는 순간 이야기들이 들어갈 자리가 마련된다.
사진가는 그렇게 사진을 찍고 자신의 사진속에서 이야기들이 이야기를 낳는 기적을 기다린다.
어쩌면 사진가가 진짜 이야기꾼인지도 모른다.
거미가 거미줄을 뽑아내는 운명을 가졌듯이 예술가들의 운명은 고통의 출산을 감당하는 것이다.
시지프의 형벌처럼 끊임없이 영혼에서 터져 나오는 것들을 감당하려면 자신의 운명에 맞서는 배짱도 필요하리라.

영화 보기를 좋아하다 보니 사진가들의 사진 속에서도 영화의 단편들을 찾게 된다.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필름 속을 걷다》에 이런 글이 있다.
『하인리히가 머물던 티베트 라사(〈티벳에서의 7년〉)의 짙푸른 하늘이 그대로 스크린이 되고, 사자왕 아슬란이 어슬렁거렸던 뉴질랜드 남쪽 끝 푸라카우누이 베이(〈나니아 연대기〉)의 파도소리는 배경음악이 된다. 오타루(〈러브레터〉)에 도착했을 때 하늘과 땅의 경계를 지우며 쏟아지던 눈 풍경은 오프닝 신이 되고 베니스(〈베니스에서 죽다〉)에서의 마지막 밤에 헤맸던 미로 같은 골목길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이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지는 듯한 기시감을 안기며 라스트 신이 된다 – 필름 속을 걷다 프롤로그中에서』

사진작가 김천용의 사진이 그렇다.
그가 포토 에세이집 《LALO》에서 보여주는 사진들은 지친 영혼을 먼 이국으로 인도한다. 흐물거리는 영혼을 등기로 부쳐 눈을 감았다 뜨는 짧은 순간 뉴질랜드에 도착하게 한다.
그의 책을 펴는 순간 피터 잭슨의 판타지가 부드러운 아트지에 배어있다.
반갑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을 배고 – 베개로 딱 좋은 두께다 – 에미넴(Eminem)을 들으며 《LALO》를 본다.
한 편의 영화가 펼쳐지는 듯한 묘한 매력이 있어서 좋았다, 아이러니하게 이 포토에세이가 에미넴과 이렇게 잘 어울릴 줄이야.

사진작가 김천용은 1966년 서울 출생이다.
어려서부터 필름 사진으로 많은 실험을 하면서 사진에 대한 작가적 정체성을 가지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사진을 전공하려고 했으나 사진은 학교에서 배우는게 아니라는 생각에 대신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면서 개인적으로 英美詩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는 사진 예술에 대한 독특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사진기의 셔터를 누르는 행위에 형이상학적인 감수성을 부여하는 이른바 포토리얼리즘에 감수성을 입히고자 노력을 해왔다.
그의 정물 사진은 향후 몇 년 뒤엔 독보적인 경지에 이를 것으로 예상이 된다. 정물에 어떻게 생명을 불어넣을지는 두고보면 알 일.

오늘 김천용의 《LALO》를 보면서 《행잉록에서의 소풍》에서 느끼던 여운을 가져본다.
이 얼마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문학소년의 감정이던가.
김천용작가는 아직 젊다.
그의 작품세계는 나름 안착이 되었으나 예술이란 것이 정형화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아메바처럼 언제라도 모양은 바뀌고 예술적 지향의 지형도 바뀔 수 있다고 본다.

그의 포토에세이에서 느낄 수 있는 정서적 설렘은 아무나 만드는 것이 아니다.

[출처] : 영화와 詩가 있는 Cafe 이노 https://blog.naver.com/izen0042000/221228977730